경제 발전은 각 지역 상품의 자유로운 유통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화폐는 무역을 수행하는 매개체로서 상품 경제 운영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된 시장과 화폐 제도의 뒷받침이 없다면 국가의 발전은 지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 각국의 청동 화폐는 형태, 크기, 명문(銘文), 무게는 물론 계산 단위까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화폐의 형태만 보더라도 삼진(三晋) 지역의 한(韓), 조(趙), 위(魏)나라는 포폐(布幣)를 사용했고, 제(齊)와 연(燕)나라는 주로 도폐(刀幣)를 사용했습니다.
진나라와 양주(兩周, 동주시대 주 왕실이 2개의 작은 나라로 분열되었고 모두 낙양지역에 위치했지만 상대적 위치에 따라서 동주와 서주로 부르던 시기) 및 조·위나라는 방공환전(方孔圜錢, 네모난 구멍의 원형 화폐) 또는 원공환전(圓孔圜錢, 둥근 구멍의 원형 화폐)을 사용했습니다. 초(楚)나라는 조개 모양을 본뜬 의비전(蟻鼻錢)과 금판 화폐인 영원(郢爰)을 사용했습니다.
6국을 통일한 후, 진시황은 화폐 주조권을 국가로 귀속시키고 지방이나 개인이 화폐를 주조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호북성 운몽 수호지(湖北.云梦.睡虎地)에서 출토된 진나라 진간(秦簡)인 《봉진식(封診式)》에는 두 사람이 공모하여 몰래 화폐를 주조하다 체포된 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적인 화폐 주조가 국가 법률에 의해 엄중히 처벌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진나라에서는 화폐를 두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황금을 상폐(上幣)로 삼아 24냥을 1일(鎰)로 정했습니다. 하폐(下幣)는 잘 알려진 반량(半兩) 원형 방공동전으로, 동전에 새겨진 글자 그대로 무게가 12수(銖, 반량의 무게)였습니다.
또한 진나라는 《금포률(金布律)》과 같은 법률 조항을 제정하여 화폐의 사용, 유통, 보관을 규정함으로써 화폐의 정상적인 운용을 보장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춘추전국시대 이후의 화폐 혼란을 종식시키고 제국 내부의 상품 무역과 경제 교류를 원활하게 하여 전국을 하나의 통일된 경제 실체로 통합했습니다.
반량전이 발행되기 전, 진나라는 둥근 구멍이 있는 환전(圜錢)을 주조하기도 했습니다. 환전은 대개 옥벽(玉璧)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며, '일량(一兩)' 환전과 '반환(半圜)'전 두 종류로 나뉩니다. 현재 발견된 '일량' 환전의 명문은 '일주중일량·12(一珠重一兩·十二)'와 '일주중일량·14(一珠重一兩·十四)' 두 가지입니다. 모두 앞면에 명문이 있고 지름은 3.6~3.7cm, 구멍 지름은 0.8~0.9cm이며 무게는 보통 14g 내외입니다.
'일주중일량'은 환전 한 개의 무게가 1냥임을 나타내며, '12'나 '14'는 연도 혹은 주조 틀의 번호를 의미합니다. '반환'전 역시 무게로 가치를 표시한 환전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반환'은 '반주(半珠)'를 뜻하며, 실제 측정 결과 '반환'전의 무게는 약 7g 정도였습니다.
'반량'전은 진 혜문왕(秦惠文王) 2년(기원전 336년)에 처음 유통되었습니다. 휴대하기 편리하다는 장점 외에도, 많은 이들은 이 네모난 구멍의 환전이 고대인의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 화폐의 진정한 선진성은 화폐 몸체에 무게를 명문으로 새겼다는 점에 있습니다. 무게 표시 명문은 화폐 가치를 직접적으로 나타내어 상업 유통에 적합했을 뿐만 아니라, 진나라의 화폐 주조가 집중 생산 및 통일 관리의 특징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지명을 명문으로 사용했던 다른 나라들의 동전과는 크게 다른 점입니다. 진나라 외에도 제, 연, 조, 위나라 등이 환전을 생산했습니다. 환전을 가장 먼저 발행한 국가에 대해서는 진나라와 위나라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으나, 다른 국가들은 진나라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무게 표시 환전을 주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화폐로는 초나라의 금판(金版)이 있으며, 그중 전국시대의 영원(郢爰) 금판이 가장 유명합니다. 평면은 대략 사각형이며 표면에는 '영원'이라는 글자가 여러 줄 찍혀 있습니다. 거래 시에는 이 금판을 낱개로 잘라 무게를 달아 사용했습니다.
영원 금판은 문헌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중국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금화입니다. 초나라에는 이러한 금판이 '진원(陳爰)' 등 7종이 더 있으나 '영원'이 가장 많이 발견됩니다. 안휘, 강소, 하남, 섬서, 산동, 호북, 절강 등 7개 성 54개 시·현에서 총 1,000여 개가 발견되었습니다. '영', '진' 등은 지명이며, '원(爰)'자에 대해 학계에서는 '칭(爯, 무게 단위)'으로 해석하거나 고문헌의 용법에 따라 '바꾸다, 교환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나 아직 정설은 없습니다.
영원 앞면의 글자는 금판이 식기 전에 주조공이 구리 도장을 손에 들고 찍은 것입니다. 이러한 구리 도장이 산동성 이현 핍양성(山东.峄县.逼阳城)에서 출토된 바 있습니다. 도장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기에 주조공들은 신속하게 작업을 마쳐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영원' 도장은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여 비뚤어지거나 개수가 들쭉날쭉하며, 심지어 절반만 찍히거나 겹쳐 찍힌 경우도 발견됩니다.
영원 금판의 주조 시기는 보통 전국시대 후기로 추정되며, 한무제가 '원금(爰金)'을 몰수하고 인지금(麟趾金, 기린 발가락 모양 금)과 마제금(馬蹄金, 말발굽 모양 금)을 주조하는 한편, 재산세 신고 및 적발 정책인 산민고민(算緡告緡)을 시행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전국시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6국의 화폐로는 청동 도폐와 방족포(方足布)도 있습니다. 도폐는 칼 모양으로 손잡이 아래에 고리가 있고 칼날 부분에 명문이 있습니다. '제법화(齊法化)'가 새겨진 화폐는 제대도(齊大刀) 혹은 제도(齊刀) 중 가장 흔한 화폐로, 주로 산동성 제나라 옛터에서 발견됩니다. 시기는 전국시대 말기에 해당하며 제도폐 중 비교적 늦게 등장한 것입니다.
용견방족포(聳肩方足布)는 전국시대 평수포(平首布) 중 출토량이 많은 화폐입니다. 화폐 앞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평수포의 명문은 모두 지명입니다. 예를 들어 '안양(安陽)'은 방족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명입니다. 이러한 동전은 주 왕실 지역, 삼진 지역 및 연나라 지역에서 두루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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