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대 서예 예술을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에 비유한다면 당나라시기 서예는 이 산맥 중 가장 빛나는 정상이며, 이 예술의 정점을 장악한 대표 인물이 바로 해서(楷書) 제1인자로 불리는 안진경(颜真卿)입니다.
문헌 통계에 따르면 안진경이 일생 동안 쓴 비석은 총 70여 통이지만 현재까지 보존된 것은 10여 통에 불과하며, 서안 비림에는 안진경의 비석 7 통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안진경이 중국 서예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 지위를 입증할 뿐 아니라 서안 비림의 풍부한 소장품 규모를 확인시켜 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대당서경천복사다보불탑감응비
'대당서경천복사다보불탑감응비(大唐西京千福寺多宝佛塔感应碑)'는 안진경이 세상에 남긴 비석 중 가장 초기에 제작된 작품이며 당나라시기 승려 초금선사(楚金禪師)가 다보탑(多宝塔)을 세운 경위를 기록한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다보탑비는 안진경이 44세에 쓴 작품으로, 일반적인 생리적 연령으로 보면 중년에 해당하지만 안진경의 서예 창작 여정에서는 초기 단계에 위치합니다. 이 시기 그의 서체는 당나라 초기 서예가 구양순(欧阳询)·저수량(褚遂良)·장욱(張旭) 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뚜렷한 초당(初唐)의 기운을 풍깁니다. 비록 다보탑비가 안진경의 대표작으로 꼽히지는 않지만, 현존하는 그의 작품 중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유물이며 역대 사람들이 해서를 익히는 교본으로 삼아온 작품입니다.
안씨가묘비
'안씨가묘비(颜氏家庙碑)'는 안진경(颜真卿)이 72세에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가묘(家庙)비입니다. 비문에는 안씨 가문의 세계(世系)와 공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자 문하에 뛰어난 제자 72인 중 안씨가 8인을 차지했다(孔门达者七十二人,颜氏有八)"는 문장만 보더라도 안씨 가문의 번성과 영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예적 관점에서 '다보탑감응비(多宝佛塔感应碑)'가 안체(颜体)의 초기 작품이라면 '안씨가묘비'는 안체가 찬란한 성숙기에 접어든 걸작입니다. 속담에 "글씨가 사람을 닮는다(字如其人)"고 하는데, 이 기준으로 평가할 때 안진경은 진정 '글씨와 인품이 일치'한 전형이었습니다.
안진경은 쇠락한 관료 가정이면서도 전통 교육을 중시하는 명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오대조(五代祖)는 중국 고대 가훈제일서(家训第一书)인 '안씨가훈(颜氏家训)'을 저술한 안지추(颜之推)이며, 증조부·조부·부친 모두 서예에 능통한 인물이었습니다.
심지어 모친 집안 역시 대를 이은 서예 명가였습니다. 따라서 안진경은 세 살에 부친을 여의었지만 모친과 숙부에게서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완벽한 교육과 성당(盛唐) 문화의 영향은 그가 세상을 놀라게 할 서예 실력뿐 아니라 충신 열사의 강직한 기품과 위엄 있는 인격도 갖추게 하였습니다.
안사의 난(安史之乱)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그는 평원태수(平原太守)의 신분으로 맨 먼저 의병을 일으켜 조정을 수호했습니다. 이희열(李希烈)의 반란 때에는 회서(淮西)로 파견되어 항복을 권유하다가 반군 진영에서 생사를 초월한 채 칼날 위에서 당당히 반역자를 꾸짖었습니다.
이후 자신의 유서·묘지명·제문을 직접 작성하며 방 한켠을 가리켜 "죽은 후 장안을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묻어달라"고 말했습니다. 일대 충신이자 서예 거장 안진경은 77세의 고령에 억울하게 희생되며 국가를 위해 생을 마감했지만 천지의 정기와 인간의 굳셈이 집약된 그의 위대한 정신은 영원히 살아남았습니다.
대당삼장성교서비
'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聖敎序碑)'는 역사문화와 서예 예술 양면에서 의미를 지닌 명비(名碑)이자 중국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이는 중국 고대 최고의 정치가 당태종 이세민(李世民)이 찬문(撰文)을 지었으며, 가장 탁월한 불교학자·여행가·번역가인 당삼장(唐三藏) 법사 현장(玄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비문의 서체는 중국 최고의 서성(書聖) 왕희지(王羲之)의 필적을 집자(集字.문장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한 것으로, 이처럼 중국 역사상 세 명의 가장 빛나는 위인들을 연결한 이 비석은 금석(金石)문화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삼절비(三绝碑)'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 비석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집니다. 당태종이 중국 4대 불교 번역가 현장이 번역한 불경에 친히 서문을 쓴 후, 현장의 제자 회인(怀仁) 스님이 스승의 영광을 더욱 빛내고자 했습니다.
그는 당태종이 왕희지 서체를 열애하여 "내실에 걸어두고 밤낮으로 감상했다(置诸内室,朝夕观览)"는 사실을 알고 성교서(聖敎序) 내용을 왕희지의 행서(行書)로 집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회인 스님은 20여 년간 왕희지의 행서 필적을 하나하나 모으며, 찾을 수 없는 글자는 거금을 들여 구입하여 마침내 비문을 완성했습니다.
현밀탑비
만당(晚唐.당나라 말기) 해서(楷書)의 대가인 유공권(柳公权)이 쓴 '현밀탑비(玄秘塔碑)'는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안체(颜体)가 풍만하고 유체(柳体)가 준수한 데다 두 사람이 각기 100년씩 자기의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기에 후인들은 그들을 성당(盛唐)과 만당 해서의 대표로 추앙하며 '안근유골(顔筋柳骨)'이라 칭했습니다.
유공권은 당나라시기의 목종(穆宗)·경종(敬宗)·문종(文宗) 3대 황제를 섬겼으며, 목종 때 한림원(翰林院) 학사로 초빙되어 서예 명성이 천하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목종이 유공권에게 "붓을 어떻게 완벽하게 다루는가?(笔何尽善?)"라고 물으니 "붓은 마음에 있고,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다(用笔在心,心正则笔正)"고 답했는데, 이는 바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는 '필간(筆諫)'의 유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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