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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안 여행거리

진(秦) 알기 - 서동문(書同文)

by 시안 동행 2026. 5. 9.

진(秦)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영정(赢政.진시황)은 자신이 여섯 나라를 평정하고 천하를 안정시킨 것이 상고 시대 이후로 전례 없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자신의 공적이 삼황(三皇)보다 뛰어나고 덕은 오제(五帝)에 버금간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황제(皇帝)'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황제가 내리는  '명(命)'은  '제(制)'라 하고, '령(令)'은  '조(詔)'라 했으며, 사용하는 인장은 '새(璽)'라 칭하고 자신을 '짐(朕)'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기존의 정권 기구를 조정하여 전국적으로 '황제-공경(公卿)-군현(郡县)'의 계층 구조를 갖춘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를 시행했으며, 이는 이후 2,000여 년간 중국 봉건 제국의 행정 원칙이자 모범이 되었습니다.

 

 

공경이란 곧 '삼공구경(三公九卿)' 제도를 말합니다. 황제 아래의 중앙 정부는 삼공이 이끌었는데, 승상(丞相)은 모든 관리의 수장였고, 어사대부(御史大夫)는 승상의 부관으로서 승상을 도와 관리들을 감찰했습니다. 태위(太尉)는 군대를 관장하는 황제 직속의 최고 군사 지휘관이었습니다.

 

 

삼공 아래에는 다시 경사(卿士)를 두어 정무를 보좌하게 했으며, 삼공과 구경은 모두 황제가 임면하고 세습되지 않았습니다. 지역에 따라서는 군(郡)을 설치하고 그 아래에 현(縣)을 두었으며, 군에는 군수(郡守), 현에는 현령(縣令)을 두어 그 관료 조직 원칙을 중앙과 유사하게 구성했습니다. 문헌과 고고학 자료에 따르면 당시 진나라의 군은 36개가 넘었습니다.

 

 

국가 조직 기구 외에도 진시황이 시행한 문자, 도량형, 화폐의 통일 조치는 국가의 통일과 안정을 촉진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역사의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로부터 국가의 통일은 화하민족(중화민족) 발전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서주 시대에는 제후국들이 왕실의 문자를 표준으로 삼아 쓰고 사용하도록 보장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주 이후 장기간의 정치적 할거로 각국의 글자 모양에는 큰 차이가 생겼고, 지역마다 같은 글자를 다르게 쓰는 현상이 심각해져 국가 발전에 큰 어려움을 초래했습니다.

 

 

진시황은 6국을 통일한 후 여섯 나라의 고문자를 폐지하고 ‘서동문(書同文, 문자 통일)’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승상 이사(李斯) 등에게 문자를 정리하게 하여 진나라의 진전(秦篆)체로 개정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이사가 소전(小篆)으로 쓴 《창힐편(倉頡篇)》, 조고(赵高)가 쓴 《원력편(爰歷篇)》, 호모경(胡母敬)이 쓴 《박학편(博學篇)》을 전국에 보급하여 아이들이 배우는 표준 교본으로 삼았습니다.

 

시황제는 각지를 순행할 때도 서체의 표준화를 홍보하는 데 힘썼습니다. 예를 들어 《태산각석(泰山刻石)》, 《랑야각석(琅琊刻石)》 등은 모두 이사가 직접 쓰고 각지에 세운 표준 서체의 모범이었습니다.

 

 

진나라의 소전은 서주 금문(金文)을 간소화하고 규범화한 것으로, 획이 더욱 반듯해지고 부수가 안정되었으며 쓰기에 명확한 규범이 생겼습니다. 진나라는 서주 왕실의 옛 터에 자리 잡았기에, 진나라의 전서는 서주 금문의 서체 풍격을 더 많이 보존하면서도 예서(隸書)와 해서(楷书)의 자형을 위한 규범적 토대를 제공하여 한자 변천의 연속성을 강력하게 보장했습니다.

 

여섯 나라의 문자 역시 서주 문자에서 발전해 온 것이지만, 각 제후국 내에서 자형이 발전하고 간소화되는 추세와 과정이 일치하지 않아 그 차이는 이미 뚜렷해진 상태였습니다. 각국의 문자는 겉보기에 자형이 비슷해 보였으나 실제 획은 달랐고, 심지어 부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있어 상호 교류에 적잖은 장애가 되었습니다.

 

 

춘추 시대 이후 철기가 점차 보급되면서 철제 도구로 청동기 표면에 글자를 새기는 것이 주조하는 것보다 훨씬 쉬워졌습니다. 이로 인해 명문을 새기는 방식(각명)이 주조하는 방식(주명)을 대신하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진나라 회도부(灰陶缶)의 어깨 부분에는 ‘서환소씨십두(西奂蘇氏十斗)’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초기 예서의 운치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번체자를 조금만 알면 진나라 회도부에 새겨진 글자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위(魏)나라나 연(燕)나라의 문자는 눈에 익어 보일지라도 현대 학자들이 편찬한 고문자 자전의 도움 없이는 그 정확한 뜻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진나라 시대에 소전은 공식적인 표준 서체로서 널리 보급되었으나, 일상적인 생산과 생활 속에서 쓰기의 편의를 위한 문자 간소화는 끊이지 않았으며 예서(隸書)가 바로 이 시기에 싹텄습니다. 후베이성에서 출토된 《운몽진간(雲夢秦簡)》은 예서로 쓰인 것인데, 예서는 한자가 고체(古體)에서 금체(今體)로 전환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문자의 통일은 중국의 문화와 경제 통일을 위한 견고한 기초를 닦았습니다. 여러 학자가 말하듯, 이는 중국 민족의 수천 년 역사 흐름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건이며 진시황의 공적은 실로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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