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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안 여행거리

서안 관광가이드 - 섬서역사박물관 둘째편, 115만년전 부터...

by 시안 동행 2023. 9. 28.

서언홀(序言大厅)

 

섬서역사박물관의 서언홀에 들어서자 마자 높이가 3.5m, 무게가 약 15톤인 돌사자를 볼수있는데 중국 역대 돌사자중에서 체적이 가장 크며 함양(咸阳)에 있는 당나라 여황제 무측천의 어머니 무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돌사자는 생동감이 넘치고 조각수법이 세련되며 '중국제일사(中国第一狮)' 또는 '동양제일사(东方第一狮)'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황하와 황토고원은 중국 고대문명의 요람이며 이 요람속에서 탄생한 섬서역사문화도 인류문명의 진행과정에서 지울수없는 공헌을 하였습니다.

 

 

선사진열홀(史前陈列大厅)

 

섬서의 선사시기(史前时期)는 약 115만년전에서 기원전 21세기까지 입니다. 이 기간동안 섬서문화의 특징은 고고학발굴로 얻은 실물자료가 구전하고 분포범위가 광범하며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매 단락마다 전형적인 중대한 발견이 있었습니다.

 

 

1964년 봄, 고고학자들은 오늘날 서안의 동쪽에 있는 남전현 공왕령(蓝田县.公王岭)과 진가와(陈家窝)에서 각각 두개골화석 하악골(下颌骨.아래턱 뼈)화석을 발견했는데 이 화석들을 바탕으로 30대 여성 남전원인(猿人)의 두상을 복원했습니다. 그녀가 생활한 시대는 지금으로 부터 약 115만년전이고 현재까지 알려진 아시아 북부 최초의 직립인입니다. 그녀의 뇌 용량은 780ml로 현대인의 절반이며 이것은 당시 인류의 지력수준이 비교적 낮고 체질형태상 아직도 적지 않은 원시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며 이는 인류진화연구에 특히 중대한 의의가 있었습니다.

 

남전원인(蓝田猿人)에 이어 1978년 섬서성 대려현(大荔县)에서도 지금으로 부터 약 20만년전의 인류두개골화석 - 대려인두개골화석(大荔人头骨化石)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중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온전한 인류두개골화석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두개골 윗부분 골봉(뼈틈)의 닫힌 상태로 보아 30세 미만 남성의 두개골이라고 단정할수 있고 뇌 용량이 이미 1,120ml에 달하여 현대인이랑 겨우 300ml의 차이가 나지않으며 체질특징은 직립인과 초기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있습니다. 대려인(大荔人)이 남긴 석기(石器)는 작고 정교하며 직경이 보통 3 ~ 5cm이고 무게는 20g 미만인 괄삭기(刮削器)가 가장 많아서 그들의 생활자원 확보경로는 주로 수렵이라는것을 알수있습니다.

 

1955년 섬서성의 화현(华县)에서 발견된 지금으로 부터 약 8,000 ~ 7,000년전의 노관대(老官台)문화는 인류가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로 진입한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줬고 이는 섬서경내에서 알려진 최초의 신석기시대 문화유적입니다.

 

전시된 삼족발(三足钵)과 삼족관(三足罐)은 노관대문화에서 가장 전형적인 기물이고 부드러운 진흙으로 소결하여 단단하게 만든 이런 원시 도자기는 인류가 자연을 개조한 대단한 발명품이며 후에 중국문화의 중요한 상징으로 된 고급 도자기가 바로 이때로 부터 발단되었습니다. 이 발명은 또한 인류가 익힌 음식을 먹을수 있도록 조리용 기명(器皿)을 제공하여 인류의 생활조건을 크게 개선하였습니다.

 

석산(石铲.돌삽)과 석도(石刀.돌칼)의 출현은 석기의 가공이 과거의 타제(打制)에서 마제(磨制.간석기)로 발전했다는 것을 설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단순한 채집, 수렵에서 석산과 석도를 사용한 원시농경으로 발전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53년에 고고학자들은 서안시 동쪽 교외 산하(浐河)기슭에 있는 반포마을에서 비교적 완전한 신석기시대의 촌락유적을 발견하였고 이와 같은 유적을 임동(临潼)의 강채(姜寨)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이 두 유적은 7,000 ~ 6,000년전의 앙소(仰韶)문화시대에 속하며 섬서역사박물관에 전시된 강채촌락의 모형은 당시 한 부락의 상황을 재현한 것입니다.

 

앙소문화의 채색도자기는 당시의 회화와 장식예술수준을 나타낸것 외에 그 위에 규칙성과 공통성을 지닌 부호들은 당시 사람들이 기록용도로 새긴것으로 추정되지만 지금까지 해독되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발전의 관점에서 볼때 각 지역의 원시민족은 모두 '결승기사(结绳记事.새끼에 매듭을 지어 사건을 기록하다)', '계목위문(契木为文.나무에 무늬를 새겨 기록하다.)'라는 방법으로 자료를 기록, 보존하였는데 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부호들이 바로 한자의 초기형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모계 씨족사회이후 인류는 부계 씨족의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지금으로 부터 약 4,900 ~ 4100년전의 용산(龙山)문화가 바로 부계 씨족 단계의 전형적인 문화입니다. 1928년 산동성 장구시의 용산진(山东.章丘市.龙山镇)에서 처음 발견되었기때문에 용산문화로 부르게 되었고 이 시기에 농업과 축산업은 앙소문화에 비해 모두 크게 발전되었으며 생산도구의 양과 종류가 크게 증가하였고 사유재산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용산문화 말기부터 중국역사의 전설시대, 즉 역사학에서 말하는 '군사민주제' 시기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황제(黄帝), 염제(炎帝), 치우(蚩尤)는 고서에 기록된 이 시대의 3대 부락 수령입니다. 부락수령인 황제는 중국의 많은 고대 부족전설의 공동 시조(始祖)가 되었고 역사학자들은 흔히 황제를 분계선으로 그 이전을 몽매(蒙味)시대로, 그뒤를 문명시대로 정의하는데, 즉 황제는 화하민족(华夏民族)이 몽매시대로부터 문명으로 넘어온 상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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