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비석이 숲처럼 모여 있는 비루(碑楼)가 나타납니다. 비석을 세워 기록하는 것은 공덕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천복사 내 비석들에는 다양한 시대의 역사적 사건, 보수 내역, 그리고 사찰과 탑을 찬양한 시문들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 경내에는 38점의 비석이 보존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송나라 정화(政和) 6년(1116년)의 《대천복사중수탑기(大荐福寺重修塔记)》입니다. 이 비석에는 소안탑 보수 시 백악토(白垩土)를 칠해 탑 전체를 하얗게 만들었다는 내용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고, 탑 전체가 눈부시게 희어 태양과 함께 빛났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가장 동쪽에 자리한 비석은 ‘성지비(聖旨碑)’로 불리며, 비면 중앙에 해서체로 ‘성지(聖旨)’ 두 글자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은 이렇게 전합니다.
명나라 영종(英宗) 시기, 작사길(勺思吉)이라는 번승(番僧)은 천복사가 심하게 쇠락한 모습을 보고, 이곳저곳 탁발을 다니고 아껴가며17년에 걸쳐 천복사를 대대적으로 보수했습니다. 그는 전각과 후전뿐만 아니라 주변의 회랑까지 보수하였는데, 이 대공사는 명·청 시대 천복사의 배치와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사가 완료된 후, 그는 직접 그린 '천복전당도(荐福殿堂图)'를 가지고 경성으로 가서 당시 황제인 명나라 영종에게 공을 알리고 사찰의 이름을 하사해 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 영종은 그림을 보고 크게 진노하여, "어찌하여 지붕에 녹색 유리기와를 사용했느냐?"라고 물으며 예부(礼部)에 명하여 예법과 군규(君规)를 위반했는지 조사하여 보고하게 했습니다. 본래 유리기와는 황실 전용으로, 일반인이 사용하는 것은 범상(犯上)하는 대역죄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영종은 천복사의 역사를 잘 알지 못했기에 죄를 물으려 했던 것입니다. 예부가 사건을 조사할 때 작사길은 "천복사는 당나라 때 황실 사찰이었으며, 보수할 때 사찰 내에서 수집한 당나라 때의 옛 기와를 사용하여 장식했을 뿐 감히 함부로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영종은 그 자초지종을 알고 나서 그의 청을 허락했고 그를 천복사의 주지로 임명하였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의 제도를 따라고, 사찰의 이름을 바꾸지 않게 했으며, 직접 '칙사천복사(敕赐荐福寺)'라는 편액을 써 주었습니다. 이 편액은 오늘날까지도 소안탑 경내의 자씨각(慈氏阁) 위에 걸려 있습니다.
길가 서쪽 가까이에 있는 이 비석은 청나라 때 천복사를 중수한 내용을 담은 비석입니다. 비문에 따르면 청나라 때 두 차례의 대규모 보수가 있었는데, 모두 강희(康熙) 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중수천복사전당도(重修荐福寺殿堂图)’를 보면 중심축에 금강전, 천왕전, 자씨각, 대웅보전, 장경루, 탑, 백의각, 약왕전, 지장왕전, 그리고 와불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원락(마당) 사이에는 겹겹이 문이 설치되어 있었고, 각 전각의 문을 열면 끝까지 일직선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으나, 이는 황제가 방문했을 때만 열 수 있었고 일반 백성은 측문으로만 드나들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석들을 통해 천복사가 명·청 시대에 다시 한번 중흥(中兴)을 맞이하여 당나라 때의 규모를 거의 회복했고, 다시금 황실 사찰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소안탑 내에 명·청 시대 무과(武科) 합격자 명단을 새긴 비석 '무거제명비(武举题名碑)' 15점이 보존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안탑제명(雁塔题名)'은 당나라 때 시작된 풍습으로 과거 급제자들이 곡강(曲江)에서 연회를 마친 후 대안탑(大雁塔)에 이름을 새긴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백거이(白居易)는 "자은탑(대안탑) 하 제명처, 십칠 인 중 최 소년(慈恩塔下题名处,十七人中最少年)"이라며 자랑스러워하기도 했습니다.
명·청 시대에 이르러 섬서성 성도인 서안부(西安府)에서 문과와 무과 향시(乡试)에 합격한 거인(举人)들은 당나라 사람들의 고사를 본받아, 문과 거인들은 자은사(慈恩寺) 대안탑 (大雁塔) 아래에 이름을 새기고, 무과 거인들은 천복사 소안탑 아래에 이름을 새겼습니다. 그리하여 명·청 시대의 '안탑제명' 풍습이 형성되었습니다.
비루를 지나 계속 앞쪽으로 걸어가면 정면으로 사찰의 가장 남쪽 끝의 산문(山门)이 나타납니다. '최승법문(最胜法门)'이라는 편액은 천복사가 황실 사찰로서 숭고한 지위를 가졌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으며, 이곳이 사찰의 정문임을 알립니다.
소안탑 경내 남서쪽에 자리한 서안시박물원(西安市博物院)은 2005년 9월 문을 열었습니다. 당나라 시대 건축인 소안탑을 중심으로 약 16헥타르 부지에 조성된 이 단지는 박물관 구역, 천복사 명승 고적 구역, 휴게·쇼핑·다도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안시박물원은 유물감상, 역사유적탐방, 도심휴양 기능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내용이 풍부하고 현재 중국 내 박물관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선명한 시대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박물원과 소안탑 주변에는 정원, 정자, 누각 등 전통 양식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연못과 회랑, 조용한 산책로가 어우러진 쾌적한 경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편의 시설과 휴게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어 방문객에게 편안한 관람 환경을 제공합니다. 서안박물원의 설립은 천 년 고탑과 명찰(名刹)을 체계적으로 보호하고, 관광환경을 개선하여 옛 영광을 재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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